한때 ‘특이한 선택’이었던 비건, 이제는 새로운 표준으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건(Vegan)’은 일부의 특별한 식습관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대형 마트의 식품 진열대, 프랜차이즈 카페의 메뉴판, 편의점의 간편식 코너까지 — ‘비건’, ‘플랜트 베이스드(Plant-based)’, ‘대체식품’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식습관의 유행이 아니라 환경, 건강, 윤리, 기술이라는 복합적 흐름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오늘은 비건 및 대체식품 시장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그 배경에는 어떤 사회적·경제적 변화가 있었는지를 세 가지 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가치 소비의 확산: ‘먹는 것’에도 철학을 담다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무엇을 먹을까’보다 ‘왜 먹는가’를 먼저 고민합니다. 이는 가치 소비(Value Consumption)의 확산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가치 소비란 가격이나 브랜드보다 제품이 가진 철학과 사회적 의미를 중시하는 소비 형태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맛있고 저렴하면 된다”가 기준이었다면, 지금의 소비자는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동물을 착취하지 않으며, 나의 건강에도 좋은가?”를 동시에 고려합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습니다. SNS를 통해 환경오염과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접한 이들은 윤리적 소비를 ‘멋진 선택’이자 ‘자기 표현의 방식’으로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해 동안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교통수단의 배출량보다 많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를 인식한 소비자들은 ‘비건 버거’나 ‘식물성 우유’를 선택하면서, 개인의 소비로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또한 브랜드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비건 인증을 받고, 패키지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식물성 원료 100%” 등의 문구를 강조하며 ‘윤리적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결국 비건 트렌드는 단순히 ‘채식을 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아니라, 소비의 철학이 변한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기술이 만든 새로운 식탁: 대체식품의 혁신
비건 시장의 성장에는 식품 기술의 발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의 ‘대체식품’은 맛과 질감이 일반 식품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푸드테크(Food Tech) 기업들은 단백질 구조를 분자 단위로 분석하고, 인공지능으로 조리 과정과 식감 데이터를 학습시켜 놀라울 정도로 ‘진짜 고기 같은’ 식물성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s)와 비욘드미트(Beyond Meat)는 콩 단백질과 헴(heme) 분자를 이용해 고기의 풍미를 재현했습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육류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맛과 영양을 확보하면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의 ‘플랜테이블’, 동원F&B의 ‘비욘드미트 수입 및 유통’, 풀무원의 ‘식물성 단백질 브랜드 잇츠플랜트’ 등 대기업들이 속속 진입하며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기술 혁신은 단지 ‘고기 맛 나는 콩고기’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 세포 배양육(Cultured Meat): 동물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드는 인공육으로, 실제 동물을 도살하지 않아도 동일한 단백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발효 단백질(Fermentation Protein): 미생물의 발효 과정을 통해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로, 환경 부담이 적고 원료 확보가 용이합니다.
- 3D 프린팅 푸드: 맞춤형 영양소와 질감을 구현해 개인별 건강식, 비건식 생산에 활용됩니다.
이처럼 기술은 ‘비건’이라는 개념을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대안 식문화로 확장시켰습니다. 맛과 영양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비건식은 부족하다’는 인식을 서서히 바꿔가고 있습니다.
3. 환경과 건강, 그리고 팬데믹이 만든 변화의 가속도
비건 및 대체식품 시장이 급성장한 또 다른 이유는 환경과 건강에 대한 경각심의 증가,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입니다.
우선, 축산업은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4%가 축산업에서 나오며, 사료 생산과 목초지 개간으로 인한 삼림 파괴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에 따라 많은 환경 단체들은 육류 소비 감축을 권장하며, ‘미트 프리 먼데이(Meat Free Monday)’ 같은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건강 측면에서도 비건 식단은 ‘대체 불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성 식단은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줍니다. 또한 대체식품은 알레르기, 유당불내증 등 특정 식품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여기에 팬데믹은 결정적인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공장식 축산의 비위생적 환경과 식품 공급망의 취약성이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지속 가능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비건·대체식품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기업에게도 새로운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형 식품기업, 유통 플랫폼, 외식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비건 상품 라인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결론: 지속 가능한 식탁을 향한 전환점
비건·대체식품 시장의 성장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 가능성을 향한 시대의 요구이자, 식문화의 진화 과정입니다.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세대, 혁신 기술로 식탁을 바꾸는 기업, 건강과 환경을 모두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맞물리며 비건 시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가격 경쟁력, 유통망, 인식 개선 등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트렌드는 이미 명확합니다.
앞으로의 세대는 ‘육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선택하는 것’으로 식문화를 정의할 것입니다.
결국 비건·대체식품의 확산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스스로 내린 결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은, 오늘 우리가 한 끼의 식탁 위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